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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typical weekend

by mrs.park 2009. 10. 10.

오늘은 느직이 일어나 운동을 갈 채비를 한다.
방이 추운건지, 바깥이 추운건지, 새삼 한기가 느껴져 어떤 옷을 입을 지 고민하다가
대충 줏어입고 다시 컴퓨터 앞에 털썩 앉고 만다.
정해진 시간에 누굴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천천히 나서야지. 이런게 주말아닌가.

윈도우가 부팅하는 중에 아침운동을 일찍 나섰던 룸메이트가 돌아온다.
바지런하기도 하고, 예민해서 내가 깨면 항상 잠을 깨는 친구다.
요 최근 몇 일은 내가 5시 반에 깨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든다.
항상 새벽에 들어오는 친구인데.. 수면 시간이 많이 부족할 것같은데 말이다.

수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나는 무뎌서 룸메이트가 누구든간에 잘 지내지만,
정작 내가 잘 맞는 사람이 되어주지는 못했던 것같기도 하다.
나이에 걸맞는 배려심을 가져야 할텐데.

무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혹시 몰라 학교갈 채비도 하고, 방을 나서기로 한다.
차 안에는 반납할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다.
사실 빌려야 할 책도 있고해서 도서관을 가야 하나 짐짓 미뤄둔 탓이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다. 꺼내입은 가죽점퍼가 민망해지는. 방이 추운 거였나?
수영대신 오랫만에 등록한 헬스장은 기숙사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가방을 들고 산뜻하게 내려서 올라갔는데, 사물함에 도착하니, 샤워용품을 차에 두고 온게 생각나서
다시 차로 되돌아온다. 어쩐지 가볍더라니.

언제부턴가 혼자 하는 운동이 낯설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붙어다녔었는지.
동행이 일이 있어 가지 못하면 나도 괜시리 빠지고. 그런 점에서는 혼자가 편한 것같다.
오늘은 이어폰과 텀블러까지 완벽하게 챙겨왔다. 일주일만에 드디어. 하하.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다. 트레드밀 뒤로 헬스장 건너편 웨딩홀에 버스와 사람들로 바글대는 것과 대조된다.

친구가 점심을 먹자고 한 메세지를 운동 후에야 확인한다. 미안. 다음 주에는 일찍 나갈께.
주말에는 연구실에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추석때 부산에 기억도 혼도 두고 왔는지, 해야 할 일이 글쎄 금요일 저녁에야 생각이 난거다. 이런.
책들을 싸들고 내렸지만, 엘리베이터는 으레 6층을 누르고 만다. 집에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르리라.
5초 뒤 1층에서 누군가 타는 바람에 도리어 내렸다.
책은 반납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는 도대체가 줏대가 없는 사람인가? 씁쓰레하다.

연구실에는 랩 사람이 아닌 다른 랩 파트타임 박사들이 앉아서 공부 중이다. 왠지 모를 이질감. 그리고 긴장감.
메일함을 열어 급한 메일을 몇 통 보낸다. 월요일 오전 중에는 제발 회신이 오기를.
한 달쯤 되어서야 익숙해진 트위터를 켜고. 메신저는 여전히 꺼두기로 한다.
두어시간 쯤 무의식적으로 CCM을 찾아 듣다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일어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시리 마트에 들려 과일과 우유, 간식거리를 사 든다.
실은 학교에서부터 약간의 두통끼가 있어서 뭐라도 챙겨먹으면 좀 덜할까 싶어서 였는데..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다 먹은 후에야 먹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잠을 자야하는 거였나.
레벨 4정도의 두통은 믹스커피를 한 잔 마시고서야 2 정도로 줄어든다. 목은 여전히 뻐근하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를 계속 읽는 중이다.
알랭 드 보통은 곱씹어서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다른 책은 두세시간이면 다 읽을 분량인데도 말이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일기를 쓰게 된 것은 프루스트의 영향도 크다. 
요 몇주는 140자의 미학에 빠졌으니 말이다.  
침대에서 잠이 들기 전까지 뒤척이는 장면을 30페이지나 쓸 수 있는 그의 글 재주가 부럽기도 하고.
죽어있는 블로그도 살릴 겸.

프루스트와 대화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
그는 허식도, 진부한 문장도 싫어한다. 
여러 모로 까다로운 그가 자신의 치부에 대해서는 변명의 대가라니, 
천재는 역시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모든 일을 적합한 단어로 고뇌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나이가 들면서 둥글둥글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모든 사람과 친교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현실로 드러나면서 
실제로는 위선자였을지는 모르지만,
표면적으로는 지적인 수준과 상관없이 폭넓은 애정을 위해 정성을 쏟았던 그가 존경스럽다.

우리 삶은 그렇지 않던가. 애정과 솔직한 표현의 충돌.
그의 메세지 이면에서 드러나는 꾸밈없는 메세지.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이 나를 좋아하길 원합니다.

구글로 검색이 되는 것이 신경쓰이긴 하겠지만, 
평범한 일상을 부러 길게 묘사한 글이 흥미로운 메세지가 되길 바라며.